top of page

[글] 갑연+암주 (6/7p)

​비닐봉다리

   제길, 도대체 누구야! 막무가내로 그렇게 소리 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방이 트였다. 그리고 사내는 온데간데없고 피투성이로 죽어가는 소년이 한 걸음 남짓한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눈앞의 소년을 죽게 내버려둘 것인지 살릴 것인지 선택하라는 마냥.

   "야."

   "……."

   "죽었냐?"

   여전한 침묵. 아까는 어떻게 그리 입을 잘 놀려댔는지 묻고 싶었으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건 뻔했다.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단순한 변덕이었다. 이 소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었다. 각인의 힘을 빌린 상처들은 순식간에 아물어갔다. 온몸을 가득 메웠던 상처들이 씻은 듯이 말끔해지자 몸이 가벼워졌음을 느꼈는지 소년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희고 긴 머리카락, 새빨간 눈동자, 당신임을 여지없이 알 수 있는 모습. 아, 그제야, 왜 자신에게 이런 선택권을 주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로 온 것이구나. 나를 유일하게 인정해준 당신을 선택하기 위해서. 발이 공중에 뜨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두 발은 바닥이 없는 새까만 허공에 놓여있었다. 그림자가 더 검고 짙은 웅덩이가 되어 삽시간에 번져갔다. 당신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들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살아남아. 살아서 나를 찾아줘."

© 2023 Proudly created with Wix.com

  • 블랙 트위터 아이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