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담항설 어린이날 합작
[글] 갑연+암주 (5/7p)
비닐봉다리
<暗의 경우>
여긴 어디지? 마치 혼자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자신은 이제 막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이었는데, 갑작스레 처음 보는 곳에 낙오된 현재의 상황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해 분간조차 가지 않았다. 해는 이 난감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에이씨,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서슴없이 내뱉으며 아무나 붙잡고 협박이라도 해볼 심산으로 발을 떼려는 찰나였다. 모퉁이 너머로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이 좀도둑 새끼가! 감히 약을 훔쳐가? 마치 솥뚜껑을 흙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것 마냥 성기고 험악한 목소리가 소리의 간격을 메꿨다. 약 살 돈이 없었어요. 이내 들리는 멀겋고 힘없는 앳된 목소리가 기어가는 투로 대꾸했다. 그거야 네 사정이지! 나중에 갚을게요.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네깟 놈이 돈은 어디서 구할 건데?
모퉁이를 돌아 얼추 엿본 광경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낡아빠진 옷을 입고 상처투성이로 나뒹구는 어린 소년은 저항은커녕 말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심하게 다쳐있었다. 보아하니 그냥 놔둬도 죽을 거 같은데, 뭐가 그리 분통이 터지는지 눈썹을 잔뜩 치켜세운 더벅머리 사내는 악에 받쳐 시체처럼 널브러진 소년을 때리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더는 볼 필요도 없는 전개였다. 소년은 어차피 죽을 것이고, 남자는 별 소득도 없이 약간의 피만 묻힌 채 기분은 여전히 잡친 상태로 돌아가겠지.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는 짚더미로 대충 가려지고 무더기로 시체를 파묻는 어딘가에 매장될 터였다. 저 꼬락서니를 보느라 시간만 낭비했다싶어 다른 사람이나 찾아보려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않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심해. 다 죽어가던 목소리는 어디가고 또렷하게 내뱉는 세 글자. 시선이 다시금 꽂혔다. 그깟 독약 하나 훔쳤다고 이정도로 화날 리가 있어? 성질이 이따위니까 마누라가 도망갔겠지. 주저 없이 던지는 막말에 헛웃음이 터졌다. 명을 재촉하는군. 소년의 배를 강타하기 직전인 사내를 발길질을 막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내 멈칫, 사내는 소년을 겨냥했던 발을 대뜸 멈추더니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이상하게도 소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사내가 떠나는 순간에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말을 남기고 갔는지 또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가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