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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갑연+암주 (1/7p)

​비닐봉다리

理想, 그리고 異相

그 어느 것도 달라지지 못한 채,

 

   태어났을 때부터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축복받고, 사랑받는다는데, 그렇게 태어나질 못했다. 태어났기에 마주해야하는 삶의 막막함이 이제 막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기에 불과한 나에게도 원망이 되어 그대로 꽂혔다. 죽이지 못해 살려두는 것과 다름없었다. 부모라는 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기가 울음을 터트릴 적마다 귓가에 속삭였을 테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렇게 간절히 바랐는데 왜 숨이 붙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아직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죄책감을 세뇌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죄스러움을 덜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쥐뿔도 없는 가난한 평민의 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는 명망 높은 명문가의 집에서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나는 유약했다. 쓸모가 없었다.

   나는 장사였다. 쓸모를 들키면 안 되었다.

 

   나에겐 동생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줄 처지가 못 되었다. 사랑해주고 아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서로의 존재로 안도했다. 생존에 대한 원망이 나에게만 오는 게 아니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망을 나누어 받는다는 건 그럭저럭 위안이 되었다. 당장 내일의 삶이 확실하지 않았음에도, 그래도, 그래도 살아남았으니까. 굳이 맏이의 도리를 내걸지 않아도 너만은 꼭 지켜줄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다짐을 속으로 한 적도 있었다.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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