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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갑연+암주 (3/7p)

​비닐봉다리

   하지만 아직, 아직 부족했다. 무언가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언젠가는 숨을 쉰다는 사실마저도 원망스러웠던 순간도 있었는데, 삶의 연명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니 또 다른 공허감이 드러났다. 어쩌면 생계의 각박함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 아닐까. 그토록 갈망했던 것, 동시에 내게는 절대 주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너를 찾는 건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살아있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닌, 유일하게 살아남은 하나를 발견하기만 되니까.

왜 하필 나였을까. 당연했지만 동시에 당연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의문을 풀기도 전에 어느 순간 당신을 따르는 건 당연해졌고, 당신에게서 당연하지 않은 건 없었다.

 

   갑연은 암주의 주인이 되었다.

   암주는 갑연에게 복종했다.

 

   서로의 존재가 갈망의 증명이었다. 채워지지 못했던, 끝끝내 넘어설 수 없었던 한계의 종점에 서있는 자유란! 신분, 병고, 생사, 빈부, 우리를 기만했던 그 모든 것들을 밟고 있노라면, 발밑의 처참함 따위 알 바가 아니었다. 여태껏 견뎌야만 했던 어느 날이 더 이상 내게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정도가 없는 수단만이 확실한 인과관계를 보장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잖은가.

 

   이미 걸어온 수많은 무법의 길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너였다.

   유일하게 나의 가치로 하여금 나를 인정해주는 건 당신이었다.

 

   만약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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